‘플래시’ 댄스!

2009.03.03 글쓴이 youknowit

우리 나라를 선전하는 광고 카피 중, 요즘 흔히 사용되는 것이 “Dynamic Korea!”라는 것이다. 한때 유행하던,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조선(朝鮮)”이라는 한자어를 잘못 번역한 것이었음이 밝혀지자(朝鮮은 ‘아침의 신선함’이라는 뜻이다), 우리 정부가 요즘 들어 선택한 카피가 “Dynamic Korea!”인 것 같다.

그래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나라 웹페이지들은 가히 ‘플래시 천국’이라 할 만하다. 플래시는 매크로미디어(Macromedia)라는 회사(지금은 Adobe 사가 인수)가 개발한 웹브라우저 플러그인이다. 플래시는 주로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처리하는 데 사용된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http://youtube.com)는 플래시 기반의 동영상 재생방법을 사용하며, 음악 파일 공유 사이트인 소리바다(http://www.soribada.com/)도 플래시를 이용하여 음악을 재생한다. 그러나 플래시는 자바 애플렛과 같이 광범한 프로그램 실행 기반으로 사용될 수 있는 강력한 프로그래밍 도구이다.

문제는 ‘아무데서나’, ‘무조건’ 플래시를 사용하는데 있다. 우리 공공 기관 웹사이트의 첫페이지에는 흔히 플래시가 사용되고 있다. 뭐, 별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그림이 왔다갔다 하고, 글씨도 좀 움직여야 ‘생동감’이 든다고 생각해서 일 것이다. 아니면, 심심해서 그냥 한번 써 본 것일 수도 있다. 유용하고 정확한 정보를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전달해야 할 공공 웹사이트 첫페이지 화면의 대부분이 그냥 “보기 좋으라고” 또는 “심심해서” 그저 한번 써 보는 콘텐츠로 채워져 있다는 것은 아무리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Dynamic Korea”라 할지라도 그리 바람직한 것 같지는 않다.

한국인은 국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에 있으며,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정보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더 큰 유용성이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플래시를 ‘첫페이지’에 마구 틀어대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국가정보원’ 웹사이트(http://www.nis.go.kr) 첫페이지의 플래시 파일의 사이즈는 3.85Mb 나 된다. 이 정도 크기의 파일은 국내에서야 금방 전달되겠지만, 외국에서 접속하는 한국인에게는 “Dynamic”하기는 커녕, 극심한 정체로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 할 수준이다.

대한민국 국회(http://assembly.go.kr)는 거의 구제 불능 수준이다(웹사이트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견해를 가진 분도 있겠지만). 플래시를 끈 상태에서 접속한 첫 화면은 다음과 같다:
플래시 떡칠 국회 홈페이지
페이지 전체를 플래시로 ‘도배’하다시피 해 두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메뉴’까지 플래시로 처리하고 있다는 점이다(국가 정보원도 같다). 그저 ‘심심할까봐’ 틀어주는 플래시야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이지만, 국회 웹사이트를 둘러보는(navigate하는)데 필요한 ‘정보광장’, ‘의원광장’, ‘참여광장’, ‘열린광장(닫힌 광장도 있던가?)’, ‘알림광장’, ‘국회소개’ 등의 필수 메뉴 마저도 플래시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아예 나타나지 않는다. 이렇게 해두면 시각장애인은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하다.

물론, 국회 웹사이트는 시각장애인의 인터넷 이용을 체계적이고 집요하게 방해하는데 필요한 모든 장치를 구비하고 있다. 페이지에 접속할 때마다 틀어대는 음성 파일도 있고, 별도의 ‘시각장애인 전용’ 페이지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걸어두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전용 페이지’는 아예 만들다 만 수준이다(첫페이지 링크들만 작동하고, 하위 페이지들의 모든 링크는 링크 주소조차 아예 없다: “#”로 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메뉴 제목은 완벽하게 그림으로 만들어 붙여 두었다. 페이지 하나를 화면에 뜨게하려면 자그마치 90개 이상의 그림 파일(gif 파일)을 내려받아야 한다. 거의 ‘국회 수준’이다.

물론, 2002년부터 배포되기 시작한 플래시MX는 시각장애인의 접근성을 고려한 일정한 장치가 있긴 하다. 그러나, 그러한 장치가 실제로는 시각장애인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은 실증적 연구를 통해서 이미 밝혀진 바 있다. 여기. 국내의 정상급 개발자 분들도 이 문제를 소상히 논의하고, 설사 플래시MX를 사용하고, 그것이 제공하는 접근성 기능을 모두 활성화 하더라도, 플래시는 시각장애인에게 여전히 장애물이라는 점을 안내하고 있다. 여기.

마우스를 가까이 가져가면 하위 메뉴가 슬그머니 나타나고, 마우스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 다시 사라지는 ‘상호작용 메뉴(interactive menu)’가 일정한 유용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신기하니까’ 한번 사용해보는 유치한 발상으로 웹페이지에 무작정 도입할 기술은 결코 아니다. 그 방법 외에는 도저히 메뉴 체계를 편리하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이용자들에게 제시할 수가 없을 때 사용하는 것이며, 이때에도 플래시를 사용할 이유는 전혀 없다. CSS기술과 javascript를 사용하여, 시각장애인에게도 아무 불편이 없도록 매우 손쉽게, 가볍고 빠르게(별도로 내려받아야 할 파일이 전혀 없게), 그리고 미려하게 구현하는 방법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구현방법은 여기. 구현 사례는 여기. (MS IE를 사용하시는 분은 IE8.0으로 접속하시기 바랍니다. IE 8.0은 종전 버전들보다 더 충실히 웹표준을 준수합니다. 그동안 시장 점유율에 기대어 웹 표준을 무시해 오던 MS도 이제는 더 이상 배짱을 튕기기가 어렵게 된 듯합니다.)

[2010.8.4. 추가]
원래 이글을 적었을 당시에는 국내 웹사이트에 구현 사례가 거의 없어서 외국의 사례를 예시하였더랬습니다. 그러나 이제 매우 훌륭한 국내의 구현 사례들이 있습니다.

플래시는 원래 용도에 충실하게, 멀티미디어 콘텐츠 제공에 사용하면 가장 훌륭한 이용자 경험을 제공한다. 신나는 가라오케라도 한판 제공 해줄 것도 아니면서, 고작해야 ‘드롭 다운 메뉴’ 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플래시를 틀어대는 것은 dynamic 하지도 않고, Korea 답지도 않다.

은행권 웹사이트들이 ‘화려해서’ SSL/TLS 보안접속을 채용할 경우 전산자원이 많이 소요된다는 주장은, 2000.7에 이미 폐기되었어야 할 “보안접속 플러그인”을 어떻게 해서든 계속 팔아보려는 영업사원의 억지 논리처럼 들린다. 정확한 기술지식이 있는 정직한 개발자가 떳떳히 할 말은 아니다. 은행사이트의 첫페이지가 아무리 화려한들, 다짜고짜 첫페이지부터 https 로 접속하는 은행은 세상에 없다. 막상 민감한 정보가 오가는 페이지, 즉, https 접속을 해야 할 페이지까지 플래시 떡칠을 할 이유는 없다. 메뉴와 링크 텍스트를 모두 ‘플래시’와 ‘그림’으로 해치우는 해괴망칙한 디자인 관행을 “모든 페이지에” 적용하기 위하여, 고객들에게 “보안경고창이 나타나면 반드시 ‘예’를 누르라“고 지시하는 ‘보안 자살골’ 행위를 10년 넘게 온 국민을 상대로 계속해왔다는 것은, 기술을 떠나서 윤리의 문제이다.

  • gomibak

    대한민국 국회 홈페쥐, 예술입니다. 아주 깔끔하고 심플한게…쩝!
    예전에 모 카드사 홈페이지에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플래쉬 메뉴때문에 무척 짜증나고, 이용하기 풀편하니까 제대로 만들어 달라고 했지요. 담당자(?)가 직접 전화를 해 오더군요. 왈, “우리 홈페이지는 아주 잘 된 페이지여서 사내에서 호평이다”고.

  • Vokini

    무엇이든 남용이 되면 부정적인 것이 뒤따르겠지요.
    디자인에 (UI) 대한 부분 은 모두를 만족 시킬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네이버에 비해 구글이 그다지 점유율이 높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물론 사람에 따라서 구글이 깔끔하고 접근성이며, UI 가 더 뛰어나다 라고 할수 있습니다만..

  • Hyun

    /Vokini
    여기에서는 웹 디자인에 대한 사용자의 만족도를 주로 말하는게 아니라, 웹으로서의 기능에 충실하게 웹이 디자인 되었는가 에 대해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플래시의 남용으로 검색엔진에 노출이 되지 않으며, 더군다나 여러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해야 할 기관의 홈페이지가 플래시를 필요이상으로 사용해서 저사양 플랫폼, 임배디드 플랫폼 등에서 정보의 접근을 제한한다고 봅니다.

    네이버와 구글의 비교는 그 이전에 네이버와 위에 나열된 기관의 페이지와의 비교를 먼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이버는 언급된 페이지와는 달리 플래시 플러그인을 설치하지 않더라도 링크나 신문, 정보, 블로그 등으로 접근 할 수 있습니다. 웹 디자이너가 플래시 플러그인이 설치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 보여지는지 고려하고 디자인을 한 듯 합니다.
    그리고 네이버와 구글의 점유율은 웹 디자인만이 아니라 검색 내용과 제공하는 서비스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단순히 UI만으로 점유율에 대해 얘기하는건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 T. K.

    교수님의 유머감각(비록 의도하신 바는 아니라 할지라도)은 여전하시군요. 계속 응원합니다.

  • Agus

    예전에 공공기관 예측컨설팅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감리하신 분의 웹화면 구현관련 지적사항이 어떠어떠한 기능이 구현이 안되었다라던가 예측이 잘 안된다라던가 그런게 아니라 “이거 좀 획획 움직이게, 예쁘게 좀 못 만드나?” 였습니다. 웹개발자분들이 심플하고 기능에 충실하게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는 환경인것 같습니다.

  • T. K.

    감리하신 분의 전문성이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 AppleADay

    플래시의 세계에 빠져드는 사람들을 보면 한국인의 냄비근성이 생각납니다. 책방에 가봐도 왠 플래시 책들이 그리 많은지 (영양가 있는 책들은 별로 없죠)…사용자/공급자 모두 이쁜 플래시 사이트 몇개를 보고 후끈 달아올라 남들 하는 것 보다 뭔가 멋진걸 보여주려고 bandwidth는 뒷전이지요. 요구하는 사람들이나 그 요구를 받아주는 사람들이나 50:50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갑 쪽 프로젝트 담당자들이 보스에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경향이 강하긴 하죠. 암튼 답답합니다.

  • VongZa

    부끄럽지만, 저희 회사(금융권입니다만)도 홈페이지 새단장 했을 때 (일단은 “단장”입니다… –;;;) 첫 페이지를 보기위해 다운로드 받는 양이 3메가바이트가 넘었더랬습니다. 용량 때문에 무려 CDN까지 동원했었죠. Agus님 말마따나 획획 움직이는 플래시로 도배해서 만든 사이트였는데 처음에 내부에 먼저 공개했을 때 한숨밖에 안나오더군요… 관련 부서에 홈페이지 관련해서 뭔가 제안을 해도 엉뚱한 소리만 해대고, 참 답답합니다.

  • Mariceles

    애플의 아이팟 터치나 다른 Mobile Wi-fi Devices같은 기기들은 Adobe사에서 플래시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결과로는 이런 사이트를 아예 보지 못하는 것이죠. 저는 Http는 컴파일러가 있는 환경과 Tcp/ip가 지원되는 환경에서는 모든 사이트를 언제나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Alsuk

    플래시는 웬지 개나소나 쓴다는 느낌이 옴ㅜㅜ

  • cocooner

    특히 우분투 등의 리눅스에서는 한글 폰트를 무한 로딩하다 메모리 부족으로 플래시 플레이어가 뻗어버리는 증상이 아직도존재합니다. 이번 베타2에서는 수정된줄 알았더니 메모리는 증가하지는 않는것 같은데 그냥 브라우저가 얼어버리더니 다운되버리더군요. 이 문제는 현재 언어가 한국어로 설정된 리눅스 계열에서만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되어있는데 플레시 플레이어를 떡칠하는 한국을 위해 어도비는 수년이 지나도 이문제를 고쳐줄 생각은 안하고…국내사이트에 플래시 떡칠은 날로 증가하고 있고…심지어 네이버도 문제를 발생시킬 정도니 말 다했죠. 이 문제를 네이버에 보고하니 자신들의 서비는 “윈도용 파이어폭스”에만 최적화되어있다는 웃긴 답변을 받았습니다.

  • maybe302

    이젠 외국인대상사이트까지도 플래시를 떡칠해놨더군요… 내국인대상사이트는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외국인전용사이트를…ㅡㅡ;;
    국가브랜드위원회에서 만든 코리아브랜드넷(www.koreabrand.net)이라는 사이트입니다.
    가보시면 정말 플래시투성이 입니다…
    국가브랜드위원회(http://www.koreabrand.go.kr/) 들어가셔서 국민참여- 의견제안 이나 국가신문고-청원 해서 항의좀 해주세요… 한두명 말해서는 듣지를 않으니… 힘을 모아주세요.!

  • Kohtashino

    좋은 글입니다. 결국 문제는 무지한 소비자가 깨달게 되기까지의 시간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