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금융 감독체제 개선을 위한 제언

2010.02.06 글쓴이 youknowit

최근 불거져나온 “세계 최초 아이폰 백신 소동“은 그저 웃어 넘길 일은 아닙니다. 세계의 기술 트렌드로부터 고립되어 특이한 해법과 미봉책으로 일관해 오던 국내 보안/거래 솔루션 업계의 실상과, 정확한 전문 지식 없이 선정적 보도로 일관해온 국내 일부 기술 매체들의 수준을 드러내 주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의 전자금융 감독 체제가 과연 바람직했었는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기본 원칙들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시면 좋을듯 합니다.

1. 금융, 보험 서비스의 공공성

금융, 보험 서비스는 많은 소비자의 이해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규제의 필요성이 분명히 있습니다. 사기업에 불과하므로 시장 논리에 방임해 둘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은 천박한 논리일 뿐 아니라, 금융 보험 서비스의 근본 성격에 대한 몰이해를 노출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규제의 필요성 자체는 분명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느 수준에서 규제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입니다.

2. 규제와 자율의 조화

사업자의 단기적/개별적 이익과 공동체의 장기적/거시적 이익이 합치하지 않는 영역에서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서브 프라임 모기지와 같이 고 위험/고 수익 사업 아이템의 경우, 개별 사업자의 단기적 이익 추구를 방임할 경우, 전체 시스템의 리스크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지게 됩니다. 눈 앞의 이익 추구는 누구나 원하는 것이므로, 이것을 자율에 맏겨둘 수는 없고 규제를 통하여 전체의 손해 발생을 예방하는 것이 바로 금융감독 당국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업자의 단기적 이익과 공동체의 장기적 이익이 합치하는 영역에서는 과연 규제의 필요성이 있는지를 좀더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개별적 이해관계와 공동체의 거시적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분야에서 함부로 규제의 칼날을 들이댈 경우 개별 사업자에게도 해롭고, 공동체의 전체적 이익마저도 저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자금융거래 보안이 바로 이런 부문입니다. 허술한 보안 선택을 하는 사업자는 당장에 자기 자신에게 손해가 돌아옵니다. 전자금융거래법은 전자금융거래 사고가 발생하면 고객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을 사업자가 입증하지 못하면 사업자가 배상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제9조). 보안을 강화하고 전자거래를 안전하게 설계하는 것은 개별사업자의 목전의 단기적 이익에도 부합하고, 모든 사업자들과 소비자들의 거시적, 장기적 이익에도 부합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전자금융 거래 보안은 규제당국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개별 사업자가 스스로의 단기적 이해관계 때문에라도 사고발생을 줄이고 싶어하는 영역입니다.

3. 규제 과잉의 폐해

규제가 필요 없는 영역에 규제 당국이 개입할 경우, 과잉규제의 폐해가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1) 경쟁이 저하됩니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하나같이 ActiveX 플러그인을 사용한 해법을 똑같이 채택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그저 “금감원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된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용자PC에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하라, “공인인증서를 사용하라”는 등의 경직된 규정을 애초에 두지 않았더라면 국내 금융기관들 중, 적어도 일부는 벌써 ActiveX 플러그인을 걷어내고, 더욱 진전된 보안 해법을 채택하여 사업을 펼치고 있었을 것입니다. 국내의 보안 업계도 미국, 유럽, 이스라엘, 호주 등 세계 유수의 보안 솔루션 사업자들과 경쟁하는데 필요한 기술력 확보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공인인증서와 ActiveX가 최상의 탁월한 해법이라면 강제 규정이 없더라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업계가 스스로 채택하고 있을 것입니다.

(2) 혁신이 저하됩니다. 규제는 사업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과 혁신의 고통을 덜어주기도 합니다. 국내 은행들은 모두들 규제 당국을 원망하면서 고만고만한 똑같은 해법으로 현상 유지를 하면서 현재의 시장 구도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불평을 늘어 놓지만, 한편으로는 편안함을 누릴 뿐 아니라, 심지어는 혁신적 뱅킹 사업을 추진하고 준비할 인력 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실제로 일부 시중 은행들의 e-business 사업단은 파이어폭스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컴맹 e-business 사업단장님’께서 군림하는 한가한 부서일 뿐입니다. 새로운 어떤 경쟁 사업자가 혁신적 뱅킹 솔루션을 선보이면서 기존의 시장 구도를 뒤흔드는 “피곤한” 사태가 생길 가능성이 봉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선보인 하나N뱅크 앱에 대하여, 가장 큰 불평과 볼멘 소리를 쏟아 낸 자들은 바로 국내 은행들입니다. 편안히 장사해 오고 있는데 왜 피곤하게 만드냐는 것이지요.

(3) 서비스의 질이 저하되고 소비자가 피해를 입게 됩니다. 온국민들이 자기 컴퓨터에 ActiveX를 덕지덕지 설치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잘해왔지 않느냐? 라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 컴퓨터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현 사태는 한마디로 전국민이 입은 막대한 피해입니다. 외국은 계좌이체를 하려면 이틀 사흘이 걸리지 않느냐? 라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유럽, 호주를 가보십시오. 하다 못해 이웃 일본을 살펴 보십시오. 우물안 개구리가 꿔왔던 자화자찬의 긴 꿈에서 빨리 깨어나지 않으면, 앞으로 제2, 제3의 “세계 최초 아이폰 백신 소동”이 계속 벌어질 것입니다.

실제로 사고를 잘 막아 오긴 했습니까? 이점이 바로 모든 금융소비자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점입니다. 아래 설명드리는 규제 당국의 역할과 개입이 시급하고도 절실히 필요한 분야가 바로 여기입니다.

4. 투명성 제고

각 금융기관별 전자금융 사고 발생 빈도, 발생 규모, 사고의 유형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있습니까? 모두들 사고발생을 조용히 덮고 적당히 무마하고 넘어가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누구를 위해서 도움이 됩니까? 지금까지 정말 잘 막아 왔다면, 사고발생 내역을 투명하게, 자랑스럽게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실제로 우려할 만한 수준의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면, 더더욱 이 사태를 숨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각 금융기관이 자발적으로 자신과 관련된 사고거래 내역을 규제 당국에 정직하게 신고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하는 손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사고거래가 발생하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소비자)는 해당 금융기관에 항의하거나 소비자 단체에 호소하거나, 그래도 잘 해결되지 않으면 언론사 기자를 어렵게 접촉하여 기사화 시키는 등의 “매우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거대한 은행과 개인이 1대1로 맞서는 상황에서, 서로 기싸움과 힘겨루기가 벌어지는 현재와 같은 사태는 시급히 교정되어야 합니다.

앞으로는, 전자금융 사고 신고 및 피해 보상 요구 절차를 금융감독원이 일괄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감원이 분쟁에 직접 개입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금융기관의 홈페이지 초기화면에는 전자금융 사고신고/분쟁조정 링크를 제시하도록 하고, 소비자가 이 링크를 누르면, 금융감독원이 운영하는 전자금융사고 통합 신고 페이지로 연결되도록 하십시오. 피해자가 여기에서 사고거래의 상세한 내역을 입력하면, 금융감독원은 그 내용을 파악한 다음 해당 은행에 이첩하고, 분쟁 처리 과정을 모니터하면 될 것입니다.

이 작업은 진작에 금융감독원이 당연히 했어야 할 금융 소비자 권익보호조치의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를 규제 당국은 적절하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소비자들은 어떤 은행의 해법이 저열한지를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적절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사고거래 발생과 관련된 정보가 제대로 관리되고 투명하게 공개되면, 모든 금융기관은 최선을 다해서 안전한 기술선택을 할 것입니다. 사고거래의 유형이 이렇게 잘 정리되고 분석된다면, 예방 대책을 마련하는 일도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더이상 금융감독원이 보안기술의 상세한 내용에 대하여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고, 명령할 필요도 없습니다. 굳이 외국의 사례를 인용하지 않겠습니다. 이와 유사한 수준의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하여 전자금융서비스의 안전을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나라는 이미 있습니다. 그런 나라의 금융감독 당국은 보안기술의 상세한 내용에 대하여 경직된 규정을 들이대지 않습니다.

소비자와 사업자의 합리적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야 말로 전자금융 보안을 확보하는 가장 올바른 길입니다. 합리적 판단에 필요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은 바로 규제 당국의 몫입니다.

5. 금융감독원에 거는 기대

최근 발표된 스마트폰 전자금융 보안대책은 종래의 PC 전자금융 보안대책에 비하면 획기적으로 진전된 바람직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래와 같이 “이용자PC에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하라는 식의 특정기술 편향(플러그인 편향)의 표현도 이제는 사라졌고, “공인인증서를 사용”하라는 식의 경직된 표현 대신에 “전자서명 등”을 사용하라는 보다 유연한 정책 기조를 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취약점 모니터링 체제”를 도입하겠다는 부분은 훌륭한 정책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취약점 모니터링은 사고거래의 유형을 분석하는 작업을 당연히 전제하는 것이며, 위에서 제안드린 전자금융 사고 통합신고 체제를 이미 구상하고 계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스마트폰 전자금융 보안대책과 같이 (1) 유연하고 중립적인 보안 기준(입력정보 보호대책, 악성코드 예방대책 등)을 제시하고, (2) 취약점 모니터링을 통하여 각 사업자의 performance 를 합리적 수준에서 투명하게 공개하는 정책 방향은 조만간 PC전자금융 부문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채택된 정책에 대하여는 지속적, 상시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함은 당연하고, 그 정책의 미비점이 발견되면 신속히 수정하시는 것이야 말로 현명한 규제 당국의 선택일 것입니다.

전자금융거래와 관련하여 그동안 철저히 외면되었던 소비자의 알권리에 대해서도 이제는 관심을 가지실 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