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 드리는 제안

은행 거래의 절반 가량은 이미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온라인 영업 부문의 중요성은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은행 등 금융권은 과연 이 트렌드에 대처하는데 필요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요? 큰 구도를 이해하고, 장기적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는데에는 ‘경영학/인문학 배경’의 기획 인력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수준의 막연한 플랜 만으로는 역부족일 것입니다. 금융권은 무엇보다도 분리 발주 능력을 스스로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리 발주 역량

금융 거래 웹사이트를 “통짜로” 어느 업체에게 맡기고, 그저 “잘 좀 만들어 달라”는 수준의 발주에 머물러 온 것이 지난 10여년 간의 현실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마케팅 면에서도, 보안 설계 면에서도, 다양한 고객 환경 지원 면에서도 모두 ‘어중간’ 한 수준의 온라인 뱅킹 서비스에 머물고, 천편일률적, 그 나물에 그밥 스타일의 웹페이지를 모든 은행들이 떠 안고 있는 것입니다.

은행 등은,

  •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제시할 능력
  • 응찰 업체들의 역량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선발하는 능력

을 스스로 갖추어야 합니다. 수주 업체가 이일을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런 능력을 자체 구비하고 있는 국내 은행이 실제로 있습니까?

온라인 금융 사업을 기획하고 발주하는 데에는 다음 세가지 요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과 역량이 필요합니다. 은행이 실제로 이들 요소를 스스로 “구현”할 역량을 갖추라는 것이 아니라, 이들 각 부문에서 은행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정리하고 “발주”하는데 필요한 수준의 역량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a)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부문

온라인 영업은 “컴퓨터 모니터 스크린”이라는 매체에서 은행과 고객 간의 모든 의사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은행이 웹페이지를 통하여 고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마케팅 메세지들이 무엇인지, 어떻게 제시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고객들에게 가장 큰 만족과 편리함을 주며, 은행에게도 가장 유리한 디자인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실제로 각 스크린 별로 페이지가 어떻게 ‘디자인’되어야 하는지는 ‘웹디자이너’에게 맡길 일이 아니라, 마케팅/광고/커뮤니케이션 전문 에이전시에게 발주를 하는 것이 옳습니다. 은행의 요구 사항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자는 커뮤니케이션 전문회사이지, 웹디자이너가 아닙니다. 웹페이지 소스코드를 알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심리와 은행의 요구를 정확히 간파하고 이 둘을 연결하고 구현하는 능력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물론, 은행부터 먼저 자신의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를 정리하고 제시할 능력이 있어야 하겠지요. 웹페이지를 통한 신규 고객 영입 가능성에 주목할 것이냐, 기존 고객에게 더욱 편리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치중할 것이냐, 오프라인 점포의 비효율을 온라인 영업을 강화함으로써 대처하는데 주목할 것이냐 등의 경영 전략에 따라서, 웹페이지의 디자인과 메세지 제시의 강조점이 달라질 것입니다. 은행의 영업 전략을 구체화하고, 그것을 반영하여, 은행이 궁극적으로 고객의 모니터 스크린이라는 제약된 공간에서 제시되기를 원하는 메세지가 과연 무엇인지를 응찰자에게 분명하게 제시할 ‘기획 능력’은 은행 스스로가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야 ‘발주’라도 제대로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b) 보안 설계 부문

은행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는 거래(transaction)와 관련되는 부분과, 정보/마케팅 등 순전히 informational 한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보안 설계는 오로지 거래에 관한 것이고, 은행의 거래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입니다.

이 부분 설계를 담당하는 분들은 마케팅을 알 필요도 없고, 웹표준을 알아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스타일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군더더기를 제거한 채, 오로지 필드(field) 명칭과 필드 입력란 등의 요소만으로 설계 작업이 이루어지면 됩니다. 즉,

id

password

amount

등으로만 작업이 이루어지면 되므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의 보안 업체들을 상대로 발주하기 용이한 분야입니다.

보안 설계를 담당한 업체가 완성된 솔루션을 발주자에게 납품하면, 발주자는 독립된 다른 보안 컨설팅 업체를 선정하여, 이 솔루션에 대한 점검(vetting)을 수행하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설계를 담당한 업체는 독립된 점검에 필요한 한도에서 필요한 정보나 documentation 등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겠지요(물론, Non-Disclosure Agreement 를 맺고).

어느 한 업체가 납품한 보안 솔루션을 은행이 무방비 상태로 그냥 믿고 채용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납품한 보안 설계를 독립된 제3자가 검증하는데 필요한 수준의 정보도 제공할 수 없으니, “무조건 자기만 믿으라”는 업체는 애초에 믿을 만한 업체가 아닙니다.

요컨대, 보안 설계는 그것을 구현하는 업체와 검증 하는 업체가 분리되어야 합니다.

(c) 코딩 부문

이 부문은 마케팅 지식도 필요 없고, 보안 지식도 필요 없습니다. 디자인 감각도 필요 없습니다. 코딩을 하시는 분들이 페이지 디자인을 하도록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잘못된 기대입니다.

코딩은 오로지 html, css 등의 웹 표준 기술을 원숙한 수준으로 구사함으로써,

  • 모든 기기, 모든 플랫폼에서 서비스 접근과 이용에 지장이 없도록 확보하는 작업
  • 마케팅/커뮤니케이션 팀이 확정한 디자인을 가장 효율적인(bandwidth를 가장 적게 사용하는) 방법으로 미려하게 구현하는 작업
  • 장애인의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확보함으로써, 장애인 차별 금지법에 저촉될 소지를 없애는 작업
  • 을 전담하는 부문입니다.

보안 업체가 코딩도 하고, 페이지 디자인도 적당히 해치우는 경우, 결국 전체적으로는 이류, 삼류의 결과물 밖에 내 놓을 수 없습니다. 이른바 SI(System Integration) 업체가 “통짜로” 어떤 프로젝트를 수주한 다음, 보안 솔루션을 적당히 구입하여 편입하고, 디자인도 그럭저럭 어디에 하청줘서 해치운 다음, (마케팅이나 커뮤니케이션 측면은 아예 고려조차 안 한 상황에서) 웹사이트 전체를 통짜로 납품하는 사태는 모두에게 불행합니다.

지금까지 이런 관행이 지겹게 반복되어 왔던 이유는, 은행 자체가 “발주”할 역량 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어느 업체를 선별해서, 무슨 일을 시켜야 하는지도 모르는 딱한 지경에서, 이른바 “대기업”에게 맡기면 “알아서 잘 해 주겠지”하는 심리로 돈만 왕창 퍼주는 사태…

부탁해요~

은행들은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온라인 뱅킹, 온라인 영업과 관련하여, 은행이 지금까지 과연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결정을 해 왔는지요? 어떤 기술적 선택들이 있었는지 은행이 알고나 있었습니까? 그 중 어떤 선택을 누가 포기했는지, 왜 포기 했는지, 그 결과로 은행이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은행의 입장에서” 정확히 판단해 왔는지요? 그럴 능력과 역량이 있었는지요?

지금이라도 은행들은 e-business를 담당하는 부서에 대하여 근본적인 개혁과 획기적 지원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능력에 맞는 파격적 대우, 그리고 무엇보다도, 은행 조직 내에서 e-business 부문에 대한 장기적 비전과 입지(적절한 인사상 대우)를 확보해 주어야 은행의 이익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는 소중한 인재를 은행이 확보하고 양성할 수 있습니다. 다른 어떤 업체가 은행의 이익을 지켜주지는 않습니다.

은행 전산부서는 그저 거쳐가는 곳이고, 지점장 되는 것만이 지상 목표인 그런 조직에서, 어떻게 온라인 뱅킹 영업/기술의 전문적 안목과 역량을 갖춘 인재가 생겨날 수 있겠습니까? 온라인 영업이 은행에게 그렇게 중요하다면, 그에 걸맞는 인사 조직 구조의 개혁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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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직업은 법률가이지만, 법이 지배하는 사회보다는 옳음이 지배하는 사회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거창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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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Responses to 금융권에 드리는 제안

  1. 맥매니아 says:

    좋습니다. 이 글이 널리 퍼져야 할텐데… 언론에서는 이런 글 안퍼가나? ㅋㅋ 소수의 블로거들만 이런 글을 보는것이 안타까운 1인

  2. unipro says:

    수고가 많으십니다.
    교수님의 수고가 결실을 맺기를 응원합니다.

  3. 빈민 says:

    저는 빈민층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거지에 가깝습니다.

    국가에서 행하는 시험 접수, 민간에서 행하는 시험 접수, 수강 신청 등을 할 때 오로지 인터넷으로만 접수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일례로 국가 공무원 시험 접수는 오로지 인터넷으로만 접수를 받습니다. 방문접수 자체가 안 됩니다. 행정소송을 하려고 해도 돈과 시간이 없습니다. 당장 오늘 먹을 거, 내일 먹을 거 걱정하는 사람입니다.

    MS윈도우가 없으면 시험 접수가 불가능합니다.

    그 흔한 MS윈도우를 돈 주고 구입할 능력이 되지 않아서
    PC방에서 접수를 했었는데 USB에 바이러스가 감염이 되었습니다.
    저희 집안이 일순간에 폭삭 망해서 부탁할 만한 지인 또는 친구도 없습니다.
    얼마전까지 MS윈도우를 어쩔 수 없이 불법 카피하여 사용해오다가 다행히 최근에 윈도우7 RC 버전을 합법적으로 무료로 다운받아서 겨우 시험 접수를 했습니다. (MS에 감사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MS윈도우에서만 결제가 된다면 저 같이 거지에 가까운 사람은 시험 접수, 수강 신청 등을 하는데 있어서 불법을 저지를 수 밖에 없습니다.
    저 같은 사람들이 극소수이겠지만, 나랏일 하시는 분들, 높은 위치에 계신 분들… 저 같은 거지가 범법자가 되지 않으록 여러 분야에서 협력하여 훌륭한 시스템을 만들어 주십시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4. 최준열 says:

    근데 제가 사업을 하면서 주변의 다른 사장님들을 보면…저런 사장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자기가 뭘 원하는 지 명확히 모르는 사람이 이 세상에 참 많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고 할까요…

    마케팅도 “나는 대중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지시를 정확히 내리는 게 아니라 “유명 연예인 써서 잘 좀 해 주세요”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요…

    2009년에는 뭘 개발하고 2010년에는 뭘 개발하고 마스터 플랜이 머리속에 명확하게 있는 게 아니라 막연하게 직원들 보고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내 봐 봐” 이게 끝입니다.

    특히 게임 회사들이 그런 게 심하죠. 우리 회사는 한국 시장에 어떤 컨셉의 게임을 선보이겠다라고 하는 명확한 계획 없이 “스타 같은 거 하나 만들어 와” 이게 끝입니다. 대체 “스타 같은 거”라는 말이 뜻하는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진지…-_-

    그만큼 이 세상을 별 생각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겠죠. 교수님은 금융IT의 문제를 건드린 것이 아니고 생각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를 건드리신 거 같습니다.

  5. mylinux03 says:

    금융 결제원에서 금융 정보보호 공모전을 하네요..
    http://contest.kfisac.kr

  6. mylinux03 says:

    금융 결제원 지원시 우대한다고 하는데..

  7. pentassoft says:

    an ethical question when dealing with property.
    nice article anyway

  8. 질리다 says:

    유노잇이라는 분은 열정과 세상에 대한 분노가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ㅡㅡ;; 모든 일이 한꺼번에 쏵! 바뀌는 건 없습니다. 우리가 선진국이 좋은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듯이 말이죠. 현 상황이 실타래가 얽힌 것 처럼 되있는 상황을 정치적인 성향으로 분노를 표하면 될 일도 안됩니다.

    아주 먼 길을 가야 되니 한걸음씩 가셨으면 합니다. 하나하나씩 푸세요. 서브메뉴보고 질립니다.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아니면 운동을 나누던지. 이도저도 아닌 그냥 자기 얕은 지식을 표출하는 마스터베이션 정도로만 보이는군요. ㅡㅡ;;

    저희는 저희대로 작은 운동을 시작하겠습니다. 실행에 기반한. 질서 안지켰다고 사람 팰 수 없듯. 안되는 것들을 하나하나 설득해 나가며 풀어야죠~ 인내심을 갖고. ^^;;

    • laughman says:

      전형적인 물타기 발언이네요.

      잘못된 것이 있으니 잘못된 것을 고치라고 말하는 것일진데..

      그게 당장 바뀌겠냐는 식으로 글쓴이의 의도를 희석시키는군요.

      혹시 보안업계 관계자세요?

    • 아무개 says:

      SaveIE6같은 운동 말씀하시는 듯 싶네요.

      아무래도 실무자 시즌2로밖에 안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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